5년간 동네 소아과 662곳 문 닫을 때 24시간 동물병원 5,200곳 성업하는 시장의 역설
380조 원 쏟아붓고도 아이 대신 반려견 안긴 사회, 생명 돌봄을 시장 방임에 내맡긴 국가의 직무유기

[▲개를 태우고 있는 유모차 이미지]
[외신 포커스] 외부자가 본 한국의 단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의 마이카 매카트니(Micah McCartney) 기자가 조명한 한국의 단면은 전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쇼핑몰인 G마켓에서 2023년 1~3분기 반려동물용 유모차 판매 비중이 유아용 유모차를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상징적 사건을 다루면서다.
G마켓에 따르면 반려동물용 유모차와 유아용 유모차의 합계 판매량을 100으로 봤을 때, 2023년 1~3분기 반려동물용 유모차의 비중은 57%, 유아용 유모차는 43%를 차지했다. 다만 이 수치는 국내 전체 유통시장이나 모든 온라인 플랫폼의 판매량이 아니라 G마켓의 비교자료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OECD 최저 수준을 기록한 대한민국에서,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해 수백조 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왔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왜 아이 대신 반려동물을 품에 안고 유모차를 미는가?
뉴스위크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소비 유행이 아니다. 살인적인 주거비와 숨 막히는 경쟁,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인간의 돌봄과 가족 형성마저 시장의 선택 문제로 밀려난 한국 사회의 서글픈 풍경이다.
[데이터 팩트체크] 국내 실측 통계 교차 검증
외신이 짚어낸 ‘유모차 역전’ 현상의 배후에는 국내 의료·돌봄 인프라의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유통업계 비교자료에서 반려동물용 유모차가 유아용 유모차를 앞질렀다. G마켓의 2023년 1~3분기 판매량을 보면 반려동물용 유모차의 비중은 57%, 유아용 유모차는 43%였다. 이는 유모차 전체 시장에서 개모차가 57%를 차지했다는 뜻이 아니라, 두 상품군의 합계 판매량을 100으로 환산한 비교 수치다. 그럼에도 아이를 태울 유모차보다 반려동물을 태울 유모차가 더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저출생과 반려동물 중심 소비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임에는 틀림없다.
둘째, 소아청소년과의 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건복지부 자료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전국 소아청소년과 의원 662곳이 폐업했고, 같은 기간 새로 문을 연 의원은 617곳에 그쳤다. 단순 폐업 숫자만이 아니라 개업과 폐업의 흐름을 함께 보면 지역 소아의료 기반이 꾸준히 축소돼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전공의 수급 상황도 심각하다. 20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전기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정원 205명에 53명이 지원해 확보율 25.9%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2023년 말 발표된 당시 모집 결과다. 이후 상황은 더 악화돼 2026년 현재 전국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113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확대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동물병원 인허가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동물병원은 2024년 말 5,259개소로 집계됐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 전체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동물병원 수가 최근 5년간 매년 8.4%씩 증가했다거나 수도권 주요 도심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원보다 3.2배 많다는 주장은 공식 통계로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두 시장의 구조가 다르다는 점이다. 소아 진료는 건강보험 수가에 묶여 있고 야간·휴일 진료에는 추가 인력과 운영비가 필요하다. 반면 반려동물 진료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중심 구조여서 의료기관과 서비스에 따라 진료비가 크게 달라진다. 이 차이가 소아청소년과와 반려동물 시장의 성장 격차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소아과 인력이 동물병원으로 직접 이동했다는 인과관계까지 통계만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 분석] 정책의 허실과 현장의 실질적 파장
이 뒤틀린 시장 구조의 결과는 경기북부의 골목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 상가 1층을 가보라. 대형 동물병원과 프리미엄 펫 미용실, 반려동물 위탁관리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반면 같은 동네에서 밤늦게 아이가 고열이나 경련 증상을 보일 때 찾아갈 수 있는 야간·휴일 소아진료기관은 여전히 부족하다.
경기북부의 달빛어린이병원은 의정부·고양·남양주·파주·포천·양주 등 일부 지역에 운영되고 있지만, 모든 시·군에 고르게 분포한 것은 아니다. 특히 가평과 연천처럼 달빛어린이병원이 없는 지역에서는 야간·휴일 소아진료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포천은 달빛어린이병원이 운영된 사례가 있으므로 ‘포천·연천·가평 모두 0곳’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이른 아침부터 접수 대기표를 받는 이른바 ‘소아과 오픈런’을 감수하거나, 야간에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응급실과 대형병원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문제는 단순히 병원 숫자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지역별 소아 인구와 의료 수요에 비해 야간·휴일 진료체계가 충분히 설계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일부 정책 담론은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개인의 가치관이나 도덕성에서 찾으려 한다. 청년들이 반려동물을 편애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은 뒤 아플 때 찾아갈 병원이 부족하고, 맞벌이 부부가 안심하고 맡길 공공 돌봄망이 충분하지 않으며,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출산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소아의료와 돌봄 인프라를 방치한 국가가 출산율 하락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개모차 판매량의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청년들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 반려동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방향을 거꾸로 보는 일이다.
[뉴스함 제언] 지속 가능한 출구 전략과 대안
‘개모차 공화국’이라는 자조에서 벗어나려면 현금성 출산 장려책만 반복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산을 권유하는 것보다 먼저 아이를 낳아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의료·돌봄·노동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 소아·분만의료 국가책임제를 강화해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진찰료와 야간·휴일 진료 보상을 현실화하고, 경기북부와 같은 의료취약지에는 국비와 지방비를 투입해 안정적인 소아 야간·휴일 진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모든 기초지자체에 대형 공공어린이병원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방식은 현실성과 재정 부담을 따져야 하지만, 최소한 지역별 소아진료 공백을 방치하지 않는 국가 책임은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소아청소년과 인력의 지역 편중을 완화해야 한다. 공공의료 인력 양성 과정에서 소아청소년과와 필수의료 분야를 별도로 지원하고, 장학금과 수련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일정 기간 지역 거점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의무복무제는 강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적정 보상과 안전한 근무환경,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셋째,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시간을 회복해야 한다. 법정 노동시간과 주 40시간 노동 원칙이 현장에서 지켜지도록 감독을 강화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실질화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가 퇴근 후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공공 돌봄서비스의 운영시간과 접근성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지역 단위의 의료·돌봄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전국 병원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별 아동 인구, 야간 진료 수요, 응급실 이동거리, 소아청소년과 폐업률을 함께 분석해 의료취약지를 정하고, 그 지역에 인력과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동네 소아과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출산율만 올리겠다고 외쳐봐야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개모차 판매량은 청년 세대의 이기심을 증명하는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이 얼마나 큰 위험과 비용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비시장 속 경고음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명과 다음 세대를 지키는 공공성의 회복, 여기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 있다.
원문 출처: [Newsweek] Dog Strollers Outsell Baby Strollers Amid South Korean Birth Rate Crisis (마이카 매카트니/Micah McCartney 기자, 2024년 9월 11일)
에디터 = 김가람 편집인(grgluck31@gmail.com)